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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수)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Casalnoceto


Prologue #

하늘이 ‘파랗다’ 못해 ‘시퍼렇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오래된 음료 광고에 나올법한 컬러가 천장을 뒤덮었습니다. 포도의 당분을 최고치로 끌어 올릴 만큼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7월의 이탈리아는 코로나19가 스치고 간 뒤 여느 때 보다 한산한 일상을 맞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100~200명 사이의 확진자 추세를 보이고 있는 이탈리아의 코로나 상황은 봉쇄령 시기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하루 8000명의 확진자가 나올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단시간에 솟아오르는 화염처럼 전염의 불길이 번졌지만, 이젠 사망자도 한 자리 수로 줄어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검사인구수만 500만에 육박하는 상황이니 전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요.


롬바르디아는 여전히 법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피해규모가 비교적 적은 다른 도시들은 일상에서 마스크 없이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모처럼 타지역으로 이동해 논밭으로 둘러싸인 인구 900명의 도시에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훌륭한 바리스타를 만나고 올 수 있었습니다.



Scene 1 #
Casalnoceto는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10분 정도 떨어지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밀라노가 속해 있는 롬바르디아 주와 토리노가 소재한 피어몬테 주, 제노바가 있는 리구리아 주, 볼로냐가 속해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접경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스쳐가며 또한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문화가 섞여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안드레아와 산드라 부부는 실제로는 남부 시칠리아(시실리) 출신입니다. 어떻게 이들이 이 숨은 동네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산드라의 부모님이 먼저 이곳에 자리 잡고 영업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처음에는 매우 낯선 동네였는데 특히나 이탈리아 지역 색이 도드라진 시칠리아인의 북부 피어몬테 주에서 삶은 새로운 도전과도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목적지를 2km 정도 남겨 둔 시점까지 제 눈에 비춰진 모습은 황금색 물결의 논밭과 멀리서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전부였습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해바라기 꽃은 소박한 농촌에 매혹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런 곳에 커피숍이 있기는 한 걸까?’란 의문을 속으로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총을 밟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 마을 중심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직관적으로도 이곳은 전쟁의 상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드레아에게 들은 바로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빠르티잔(Pasrtisan)이 이곳에 대거 침투해 들어왔었다고 하더군요. 이곳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해야할 상징이 전쟁이 남긴 흔적이란 게 씁쓸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Scene 2 #
오늘의 주인공은 2020년 1월 리미니에서 개최된 Sigep 전시회에서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안드레아는 2019년 모카포트 이탈리아 챔피언이었고 올해에도 참가해 준우승을 차지하며 그만의 모카포트 사랑을 보여줬는데요. 저희 부스 인근에서 시연을 하고 있던 바리스타와 자연스럽게 소통을 하면서 인연이 됐습니다.



안드레아의 모카포트 사랑은 유별납니다. 본인의 인스타그램에도 ‘Moka Lover’라고 적어 놓고 있고 매장 곳곳에도 다양한 형태의 모카포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사전적 의미는 ‘100점 만점의 커피 품질 채점 방식을 통해 80점 이상이면서 결점두가 매우 적고 깨끗하며 농가의 특성을 잘 반영한 풍미가 있는 커피’라고 하는데요. 90점 이상의 커피는 매우 드물면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향미가 집중적인 커피를 모카포트로 만들게 되면 본래 스페셜티 커피가 가진 장점이 뜨거운 수증기에 손실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모카로 내려 마시는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안드레아의 각별한 모카 사랑은 이러한 섬세한 원두를 어떻게 모카포트로 내릴 수 있을 것인지 고민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주인공의 매장 이름은 ‘Alternative Coffee Painzza’입니다. 이름만 보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으리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Panizza는 안드레아 가족의 ‘성’입니다. 이곳은 10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따바끼(Tabacchi) 역할을 해왔습니다. 따바끼란 담배와 소금 등을 판매하던 것에서부터 시작해 현재는 간단한 공과금 납부 및 담배 구입 등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2011년 산드라의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2017년에는 산드라와 안드레아 부부가 인수해 그들만의 바(Bar)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까살노체토에는 900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과 건축 그리고 와인 생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커피, 즉 에스프레소 1잔을 1유로면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비싸게 판매되는 커피는 언제든 사람들에게 저항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삶의 관성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지요. 마치 1000원짜리 김밥에 길들여지면 3000원 짜리 김밥을 받는 곳이 도둑놈처럼 인식되는 그 무엇처럼 말이죠. 가격의 차이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함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얼터너티브 커피 바에서는 고객과의 친밀한 유대감과 전문적인 안드레아의 제품 소개와 고객을 향한 제안이 빛을 발하면서 고객의 절 반 이상이 가격이 좀 더 비싼 얼터너티브 커피를 마신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는 커피 전문 매장들도 한꺼번에 7대의 그라인더를 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만큼의 다양한 커피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커피에 따른 최적의 세팅을 매장에서 구현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죠.



Scene 3 #
사실 직원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모두를 상위 레벨로 끌어 올린다는 것이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가족 중심의 작은 매장들이 장인정신과 같은 무엇을 지닌 채 보이지 않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에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2주 동안 빵과 음료의 배달을 하게 됐는데요. 밖으로 한 발짝조차 나갈 수 없었던 계엄령에 이들에겐 가정에서의 커피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구원의 빛이 됐습니다. 안드레아는 이 기간 동안 커피를 공급해 고객들의 신뢰를 한층 더욱 쌓는 계기가 됐다고 전합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이 기간에 고객들은 보다 고품질의 커피를 가정에서 마시길 원해서 등급이 높은 커피를 주문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안드레아의 각별한 모카 사랑에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유년시절 4~5살 정도의 시기에 손님이 오시면 어머님은 한국의 달고나 커피처럼 커피와 설탕을 이용해서 만든 끄레미나(Ceremina)를 만들고 싶어 하는 꼬마에게 그것을 할 수 있게 했고 모카커피를 내려서 달고나 설탕과 함께 제공하는 그 시절의 향수가 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강력한 사랑의 도구로 전달이 됐던 것입니다.


저는 이날 93점의 스페셜티 커피를 모카포트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스코어가 이렇게 높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일도 드문 일이지만, 하이엔드급 커피를 모카포트 챔피언에게서 모카포트로 내려 마실 수 있다는 점은 제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모카커피 풍미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섬세한 커피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방의 풍미를 한번 걸러내기 위해서 에어로프레스(Aeropress)라는 도구에 사용되는 종이 필터를 모카포트에 장착해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모카포트보다 섬세한 구멍을 지닌 필터로 제작해 커피에서 클린 컵을 유도하게 한 부분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날의 커피는 아주 잘 내린 드립 커피에 풍미가 더해진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아무튼 매우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름철에는 커피와 토닉을 섞어서 만든 커피토닉을 만들기 위해서 6시간동안 찬물로 내린 콜드 브루와 화사한 느낌의 스파클링의 어울림을 위해 그것에 적합한 원두를 선택하는 섬세한 과정을 거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pilogue #

이 친구의 모습에서 일본 만화 ‘바리스타’의 주인공 고우키의 모습이 오버랩됐습니다. 만화 속에서만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의 현실 판인 셈이죠. 유년시절 어머니를 위해 처음 만들어 본 커피... 그것에서 사랑을 발견한 아이가 전하는 진짜 커피 이야기는 품질 그 이상의 사랑을 담은 것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을 마시는 사람들의 기분과 취향, 감정까지도 이해하려는 비현실 세계의 주인공은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이 반영한 바람일는지 모릅니다.


그런 현실 속의 사람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고 한 잔의 커피 향기를 느끼는 것. 이런 휴식과 사치는 모처럼 만에 느껴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주변에는 이런 향기를 풍기는 분들이 계신지요? 그곳이 단순히 카페가 아닌 어디에서든 말입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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