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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일)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바리스타, 그리고 카페 VAGO


Prologue#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날에 그렇게 비가 왔어요~’ 故김현식님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란 추억의 명곡입니다. 비가 내리지만 왠지 모르게 평온해지는 그런 날, 푸릇하게 돋아난 잎사귀들이 분명히 비를 맞고 있음에도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이런 날도 있지요. 비가 매섭게 내린 퇴근길의 오후였어요.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짧은 시간에 이미 온 몸이 젖어버린 날이었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기왕 이렇게 된 것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보자’ 속으로 생각하며 자유인이 돼 집으로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지만 그저 대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지요. 살면서 몇 안 되는 그런 추억입니다.
며칠 전 토요일의 비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추적추적 내렸고, 특히나 운전을 하기에는 시야확보가 어려운 ‘전설의 고향’ 버전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도로 위의 경계석과 접촉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두 개의 타이어가 터져버렸습니다.
당혹감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편리하고 빠르게 작동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주말 동안 굳게 닫혀버린 서비스 센터 덕분에 월요일까지 낯선 도시와의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이틀이나 말이죠.
견인차, 정비센터, 실로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비하면서 영화 <박하사탕>의 명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가 생각났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집 생각이 왜 이리 나는지 커피의 향기를 찾아 떠난 2017년의 여정은 각종 범칙금과 사고로 신기록을 경신합니다. 불운의 탓으로 돌리기엔 정보가 부족하고, 부주의한 탓입니다.
신기록 하면 ‘기네스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1951년 11월 기네스 양조회사(Guinness Brewery) 사장인 휴 비버 경은 아일랜드의 강변에서 새 사냥을 하던 도중 검은가슴물떼새가 너무 빨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새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보다 기록이 모인 책을 출판하는 엉뚱한 구상을 하게 됐고, 이것이 기네스북 탄생 배경이라고 합니다.
1955년 8월 27일 198쪽의 양장본에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영국과 세계의 최고 기록들을 수록한 초판본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이듬해 미국판에 이어 1962년 프랑스판, 1963년 독일판, 1967년 일본판 등 전 세계로 확장돼 발행 50주년을 맞은 2003년엔 1억 부 판매를 돌파하고야 맙니다. 사냥의 실패가 오히려 나비효과를 일으켰습니다.


Scene 1# 에스프레소에도 기네스북 신기록이 있다는 것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를 아는 이들은 흔치 않은데요. 저는 에스프레소 관련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보유자인 ‘쟈니 코코(Gianni Cocco)’를 찾아 롬바르디아의 북쪽에 위치한 조용한 도시 Erba를 방문했습니다.
밀라노에서 열차로 한 시간이면 스위스와 인접한 도시 Erba에 도착합니다. 열차로 이동하는 중간에도 알프스 산맥의 장관이 펼쳐지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입니다. 인구 1만 6000명의 소도시 ERBA에 하루 평균 2500잔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 베이커리 전문 커피숍 VAGO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VAGO를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자 랜드마크인 셈입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고객들로 북새통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다 나왔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합니다. 역에 내려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길가에서 마주한 행인들의 수가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Scene 2# 이곳의 인기는 마스터 바리스타, 쟈니 코코와 대를 이어 전해진 베이커리 명가의 시너지 효과 덕분입니다. 쟈니 코코는 이탈리아의 유명 바, Cincin, el beverin 등을 거치며 탄탄한 실력과 경험을 갖춘 프로 바리스타입니다. 2015년 호스트 밀라노에서 열린 대회 카페테리아 부분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AICAF(Academia ItalianaMaestri Del Caffe)의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Dettofatto’라고 하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유명 코너에 출연해 라떼아트는 물론 다양한 커피 메뉴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닌 이력의 백미는 기네스 신기록 보유자란 사실입니다.
한 시간에 600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데 성공하며 그 이름이 등재됐는데요, 이는 빨리 만든다고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 평가 전문 심사위원들이 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의 색상, 질감, 추출 시간, 추출량 등이 에스프레소의 정의에 부합하는지를 공정하게 평가해 카운트되는 룰입니다.
이곳은 베이커리 매장입니다. 다시 말해 최고의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커피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높은 품질을 고집하는 주인장의 영혼이 담긴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와 갓 구운 신선한 재료의 빵, 수제로 만들어내는 파스타 생면들이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Scene 3# 유독 분주하게,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날 정도로 쉬지 않고 일하는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이곳의 주인이었습니다. 수십 명이 근무하는 이 매장의 규모는 중소기업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가 가장 열심히 일합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너가 가장 열심히 일하는 회사 말입니다. VAGO는 신선한 재료와 품질 좋은 제품으로 유명한데, 오전 7시부터 고객들로 북적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정 12시부터 파티셰들이 출근해 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고객의 테이블에서는 오픈 키친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야외에는 조경이 어우러진 테라스가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흔히 이탈리아에는 두 종류의 숍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스타일에서 변화가 없는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매장. 또 다른 하나는 VAGO처럼 대를 이어오지만, 부모님의 철학을 계승해 더 발전시킨 매장입니다. 전자를 올드함이란 단어로 대체한다면, 후자를 전통이라 부릅니다.
마스터 바리스타 쟈니의 바 섹션에는 오픈키친처럼 카푸치노에 그림을 디자인해주는 작업을 고객이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쇼잉(Showing)파트가 있습니다.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관심과 즐거움, 신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Scene 4#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마리아주라고 한다면, 이곳에는 베이커리와 궁합이 맞는 스토리 있는 음료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고객에게 프로모션 하고 있습니다. 싱글 오리진의 독특한 커피 향미를 고객에게 먼저 맡을 수 있게 한 다음, 커피의 향미에 걸맞은 초콜릿을 선택하고 그것을 하나의 패키지로 스타일링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펼쳐집니다. 이곳의 특별함은 대형 브랜드나 메인 스트리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열정과 경험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소통한 이들의 결과물입니다.
할로윈 데이,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같은 유명한 절기나 휴일이 오면 이에 어울리는 색상으로 변신하며 새로운 제품을 제안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커피를 넣어 만든 커피 맛 수제 파스타가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생면을 삶아 올리브 오일을 살짝 뿌려먹는 이 면은 씹으면 씹을수록 커피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이죠.




Epilogue# 사람과 사람 사이 아름다운 콜라보가 이어질 때 그것은 제품과 제품이라는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돼 공간을 채웁니다. 이것은 몽상이 아닙니다. 알프스의 만년설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삶의 조각입니다. 꽃피는 3월에는 새로운 활기가 생겨나길 바랍니다. 재스민 향기 풍기는 에티오피아 커피 한잔 해보세요. 그리고 엉뚱한 나비효과도 좋으니 시작해 보세요.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시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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