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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목)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더 나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는 곳, BAR NICOL

Prologue#
“500년 동안 비를 맞았으리라...” 마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처연한 듯 평안해 보이는 봄비가 두오모 대성당의 2245개의 조상(彫像)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작은 성모’라 불리는 그녀의 상징물 Madonnina는 가장 높은 스파이어 위에서 3900장의 금박으로 옷을 입고 빗속에서도 눈부시게 빛이 납니다.



Scene 1#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느 날의 봄비와는 사뭇 다릅니다. 1967년에 발표된 ‘봄비’를 제대로 된 가사도 모른 채 흥얼거려봅니다. 두오모 광장을 지나는 길에서 말이죠. 잠시 멈춰 서서 왜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단골 선술집 주인장이 부르던 가락, 표정 등이 뇌리를 스친 것입니다.


노신사의 주름진 손에서 베어지는 연어가 떠오릅니다. 두텁게 썰어냈지만,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그 맛은 욕에 가까울 만큼 걸걸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화술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맛을 보탭니다. 이 오너 셰프의 매력 가운데 한 가지는 60대라 하기엔 과감한 패션스타일인데, 진을 즐겨 입을 뿐만 아니라 컬러풀한 캔버스 슈즈를 좋아하는 유니크한, 꽃보다 청춘입니다. 피가학적 변태 ‘마조히스트’도 아닌데 가끔그의 필터 링되지 않은 거친 대화방식이 그리워지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일까요? 인간미에 대한 회귀본능일까요?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됐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를 부르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Scene 2#
5분 전까지만 해도 괴짜 루카(Luca)와 와인 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실 괴짜라고 부르기에는 예술가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루카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출신 아버지와 암스테르담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Bar Nicol의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와인 바에 들러 하몽과 스페인산 와인을 나누고 있었지요. 이 와인 바는 독특한 콘셉트와 퀄리티 때문에 인근에서도 소문이 자자한데요. 담소가 시작된 지 채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와인 바의 주인이 제가 한국인임을 알고서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세계적 악동이자, 테러리스트로 정평이 나있는 김정은에 관해서 말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6.25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 일본의 한국 침략 기간, 중국과 수천 년 동안의 갈등과 전쟁에 대한 부분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의 질문입니다. 마치 밀라노 대학에서 한국사를 공부한 학생인 듯 말입니다.


외국에서는 연일 김정은의 핵무기에 관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침묵하는 한국의 언론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해외에 살면서 몸소 느끼지만, 삼성이나 현대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 보다, 한국이란 국가 브랜드 인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브랜딩 관점에서 보면 악당 김 씨의 세습정권은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외국인들은 제게 우려와 동시에 걱정 어린 위로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불감증 환자처럼 무덤덤한 일상이 보내고 있는데 말이죠.


불감증이란 단어가 제 기억을 과학으로 돌려보냅니다. 대학시절 저는 연극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삶이란 여정은 늘 예측불가입니다. 지금은 커피와 동고동락하고 있지만, 적어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무대 위에 서 있었고, 그것이 제 삶의 전부라 믿고 있었습니다. <불감증은 병이 아니라구요>란 공연을 준비하던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 작품은 시외버스 터미널안에 있는 포장마차를 찾는 소시민들의 입을 통해 세태를 풍자한 원작입니다. 불감증 환자인 의사라는 인물을 통해 불감증 치료과정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세태를 비꼬는 대사와 우스꽝스런 장면을 통해 각종 사건 사고와 대한 비리에 대한 무감각한 우리의 일상을 풍자했습니다. 안타까운 국제정세 덕분에 셰프들, 바텐더, 옆 테이블의 손님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조명 받는 일은 근사한 일이지만, 아름다운 동기로 인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웃고 있지만,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평소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왠지 봄비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Scene 3#
두오모 광장에서 도보로 9분 정도 오후 6시 즈음 방문한 Bar Nicol. 주인 루카는 마침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메뉴의 정확한 정체성은 칵테일 네그로니에서 파생한 ‘네그로니 스벨랴토(Negroni Svegliato)’란 이름의 칵테일입니다. Bar Nicol의 시그니처 음료입니다. 네그로니 오리지널 칵테일은 이미 유명합니다. 진, 마티니, 깜빠리 등으로 구성된 칵테일 메뉴가 어느 날 바텐더의 제조과정의 실수로 독특한 음료로 재탄생했습니다. 진을 넣어야 하는데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스푸만떼, 프레세코(Prosecco, 화이트 품종으로 스푸만떼를 만들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포도)를 넣으면서 말 그대로 스발랴토(bagliato,  이탈리아어로 ‘실수하다’)로 만들어집니다. 이 의외성은 새로운 유행을 이끌게 됩니다. 루카는 이를 커피에 접목시켰습니다. 마티니를 드립커피에 여과시켜, 싱글오리진 커피가 지닌 독특한 향을 칵테일에 코팅하는 작업을 통해 신메뉴 스벨랴토(svegliato, 이탈리아어로 ‘깨어나다’)를 만듭니다.


오리지널이 실수로, 실수가 새로움을 만들고, 그것에 위트와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져 이 집만의 시그니처 음료인 스벨랴토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커피의 향이 과하면 칵테일과는 상극을 이룰 수 있는데, 칵테일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은은한 커피의 뉘앙스가 매력적인 시그니처 칵테일입니다.



Scene 4#
Bar Nicol은 1992년 처음 오픈했습니다. 루카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삼촌이 함께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젤라테리아가 특화된 카페로 시작했지만, 오피스 상권이 주류를 이루는 곳에서, 저녁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젤라또의 회전이 어렵고 이는 재료의 신선도에 악순환은 물론 매장 영업에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길 원했고, 2000년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간단한 브런치와 커피 오후시간에는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Bar로 변화했습니다.


루카는 1996년부터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매장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1999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에 뛰어듭니다. 루카는 현재 커피숍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합니다. 자신있게 지난 10년 동안 지금하고 있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데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사의 일을 돕는 차원의 일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에 대한 열정, 매우 특이하지만 스니커즈 수집광으로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라고 하네요. 펑크, 소울, 펍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다양한 음악을 소장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스니커즈에 대한 유별난 사랑 덕분에 현재 400켤레의 운동화를 보유하고 있는 수집광이 됐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본인이 수집한 콜렉션이 매장을 작은 박물관처럼 만들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Bar에 관련된 일이 열정을 태우는 발전소가 됐다고 합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그에게 행복함의 원천을 물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동료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숍 비즈니스의 종합 예술적인 부분을 언급합니다. 작지만 비즈니스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메뉴들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쉬는 날이면 틈틈이 칵테일, 차, 커피와 관련된 서적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1년 전부터, 보다 높은 품질의 커피에 대해서 눈을 뜨고, 소위 말하는 스페셜티 커피 , 싱글 오리진 커피를 소개하기 위해서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고객들 역시 커피에 대한 ‘품질 불감증’ 같은 것이 있기에 쉽지 만은 않다고 토로합니다. 좋게 말하자면, 1유로에 그래도 마실만한 커피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나은 것을 향한 열망이나 변화가 미비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고객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자연스런 루카의 노력은 차츰 성과를 이뤄내기 시작합니다. Nicol은 두오모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상당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동시에 고품질의 원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와의 오랜 기간 마찰과 논쟁 끝에, 며칠 뒤에는 한 봉지에 4유로가 더 비싼 커피를 사용할 예정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와 퀄리티의 밸런스를 고려하면서, 무언가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루카의 열정 뒤에는 스스로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즈니스를 무시한 채 마냥좋은 것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 소통되고, 새로운 경험이 또 다른 가치를 형성하는 것. 지난 1년 동안 루카가 몸소 경험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중간에 강아지를 데리고 등장한 50대의 패셔니스타 중년에게 “머리 스타일이 새로 바뀌었네?”라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건넵니다.


“문 닫을 시간 다 됐는데, 신문 가져가도 되지?”, “1부에 3유로 내고 가져가.” 등의 농담이 자연스럽게 오고갑니다. 잠시 후에 들어오는 한 여성에게는 “스프릿츠 칵테일 준비할까?”라며 마치 용한 점쟁이인듯 고객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는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선곡했다고 합니다. 소울, 레게 등 이날의 고객들의 표정이나 느낌에 따라서도 변화를 준다고 합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데다가 2년 동안 극장에서 연기자로 공연을 해본 경험이 숍을 하나의 무대로 바꿔 놨다고 합니다. 오전 7시 정도에 나와서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데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루카의 말이 어떤 이에게는 위선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직한 언어였습니다. 육체적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그의 정신세계가 놀랍고,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Epilogue#
‘신발을 좋아하는 이들은 디테일에 강한 것일까?’ 봄비를 부르는 60대 오너 셰프와 루카의 묘한 교집합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번집니다. 내일도 비소식이 있다고 하는데 왠지 싱그러운 봄비가 내릴 것만 같습니다. 루카가 건넨 수마트라의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처럼 상큼한 과일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런 봄비말입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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