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이것은 수수께끼의 식품입니다. 단 세 가지의 재료로 이뤄져 있으며 주요 제조과정은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맡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로 먹기도 하고 양념이나 디저트로 먹기도 합니다. 때로는 의사들이 병을 치료하는 데 이것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주자면 유제품입니다. 그런데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습니다.
네, 바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입니다.“
힌트를 주자면 유제품입니다. 그런데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습니다.
네, 바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입니다.“
Scene 1 #
2019년 2월 <BBC Future>에 소개된 ‘아만다’란 이름의 필자가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필자는 우리가 흔히 파마산 치즈라고 알고 있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영양과 맛에서 완벽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식품’이란 제목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이를 만드는 데 온갖 노력과 법률적 규제의 결실로 많은 요리사, 영양학자,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이 치즈를 두고 ‘완벽에 가까운 식품’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파르미지아노의 맛은 짜면서도 달콤하고 풀의 향도 있지만 넛트의 향도 있습니다. 숙성 기간에 따라 맛과 향도 다른데요. 2년 숙성된 치즈는 생과일 향이 나고 날카롭게 달콤한 맛이 납니다. 3년 숙성된 치즈는 말린 포도와 육두구를 떠올리는 향과 보다 복잡한 감칠맛이 나며 손에서 더 잘 부스러집니다. 맛뿐만 아니라 영양도 듬뿍 담겨있는데, 파르미지아노에는 칼슘, 아미노산, 단백질, 비타민 A가 들어 있어 그 어떤 식품과의 경쟁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녹색 통에 들어있는 하얀 가루의 파마산 치즈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는 전혀 가깝지 않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1996년부터 오직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주에서만 생산한 파르미지아노 치즈만 파르미지아노로 인정하며 그 외의 치즈에는 ‘파마산’이라는 영어식 표현조차 쓸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라는 이름이 법적 보호를 받는데, ‘파마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고 메이드 인 미국이라도 괜찮다고 하네요.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파마산 치즈가 사실은 치즈조차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블룸버그뉴스가 한 실험에 따르면 어떤 ‘파마산 치즈’는 최대 9%의 나무 펄프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이런 재료는 물론이고 소금을 제외한 다른 첨가물이나 보존제를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짜도 즐비하다고 하네요.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컨소시엄본부의 니콜라 베르티넬리 회장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10덩이 중 진짜는 몇 개나 될까요?”라고 질문을 던졌고 너무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지레짐작으로 아만다는 “하나 아닐까요.”라고 답했는데, 니콜라 회장은 “정확해요. 하나입니다.”라고 했다네요.
오리지널 파르미지아노는 상당히 비싼 물건입니다. 미국의 도매 체인점 코스트코가 한 덩이를 900달러(한화 약 100만 원)에 팔았을 때 이를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정말 저렴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파르미지아노가 이토록 비싼 이유는 그 정확성 때문입니다. 단 세 가지의 재료만, 우유, 소금, 그리고 우유를 응고시키는 효소 레닛만 쓰이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우유는 단 3000마리만 존재하는 ‘바체 로제’라는 희귀한 소 품종에서만 나옵니다. 단지 소의 품종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소가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합니다. 소가 먹는 마른 모이 중 적어도 50%가 건초여야 하며 건초의 최소 75%는 파르미지아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어야 합니다. 베르티넬리 회장은 “왜 그렇게 정확해야 하냐고요? 오직 이곳에서만 소가 먹는 건초가 세 가지 특정 종류의 박테리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박테리아가 생산 과정에 있으면 우유로 하여금 특유의 향과 맛, 그리고 산도를 형성케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진짜 치즈 이야기를 들려준 BBC의 필자 아만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요즘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줬으니 말입니다.
Scene 2 #
오늘 소개하려는 커피숍 CAFÉ 124의 주인 마리오는 진짜 치즈 이야기처럼 커피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본인의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그는 커피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만 언제부턴가 하향 평준화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품질에 대한 의문과 결핍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이죠.
그의 본업은 따로 있는데, 이 때문에 유럽 특히나 북유럽에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많은 마리오는 평균적으로는 품질이 높다고 평가하기 어렵지만, 유니크하고 고품질의 커피를 제공하는 숍들을 만나면서,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것도 본인의 집 근처에서 이런 매장을 만날 수 없다는 불만족이 이 프로젝트의 씨앗이 됐습니다.
매장 이름의 탄생 배경도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매장의 이름에 번호가 들어있는 경우에는 그 지역의 번지수와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저 역시 지레짐작 그럴 것이라 생각해 “번지수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답변을 듣게 됐고 지나친 관성에 의한 삶의 습관에 잠시나마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주인 마리오에게는 분신처럼 아끼는 자동차가 한 대 있는데 바로 ‘피아트 스파이더 124’입니다. 그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오랫동안 아껴온 나머지 카페의 이름도 CAFÉ 124가 된 것이죠.
Scene 3 #
CAFÉ 124의 콘셉트는 매우 독특합니다.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 30분이 되면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와인 바로 변신을 하는데요. 오전에는 두 명의 프로페셔널 바리스타가 이곳을 책임지고 저녁이 되면 소믈리에가 이 공간을 운영하게 됩니다. 두 개의 콘셉트가 상충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숍이 두 개의 다른 매장으로 변모하는 모습에 이질감은 없다고 합니다.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아닐 수도 있는 콘셉트로 보이지만, 카페에서 칵테일, 샴페인, 와인과 맥주 등을 마시는 게 익숙한 이탈리아의 문화에서 이러한 콘셉트는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는 커피숍보다는 카페란 단어가 더욱 친숙했습니다. 경양식과 차를 함께 판매하는 어찌 보면 오늘날의 유럽의 카페와 같은 모습입니다. 인스턴트 커피 또는 연하게 내린 드립 커피가 전부였던 카페에 자뎅, 도토루와 같은 커피 전문 매장이 들어서고 결정적으로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등장하면서 커피숍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Scene 4 #
저는 이곳의 수석 바리스타인 다니엘을 만나서 밀라노의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커피 햇(Coffee HAT)’이란 이탈리안 스몰 로스터리에서 공수한 ‘파나마(PANAMA)’ 에스프레소와 ‘V60’란 드립 추출 도구로 내려진 콜롬비아 내추럴을 마실 수 있었는데요 탁월한 향과 깨끗한 애프터가 특징인 커피였습니다.
이곳의 주인인 마리오는 커피 전문가가 아닙니다. 지난해 밀라노 커피 페스티벌에서 다니엘을 만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제안하게 됐다고 합니다. 새로운 가치를 제안할 수 있는 오너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리스타의 컬래버입니다. 이 매장의 독특함은 독일 베를린에서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인 BARN, 노르웨이의 스페셜티 커피, 그리고 이탈리아의 스페셜티 커피 등 다국적 커피가 동시에 사용되는 ‘편집숍’이란 점입니다.
바리스타 다니엘은 올해 이탈리안 컵 테이스팅에 참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탈리아 남부 레체 LECCE 출신이지만, 로부스타가 많이 함유되고 강하게 볶여진 커피를 선호하는 남부에서는 본인의 커피 열정을 불태우기 어렵다고 판단해 밀라노로 이주를 결정한 케이스입니다. 커피를 향한 열정이 1000㎞ 떨어진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기게 한 것이죠.
Scene 5 #
이 매장을 찾는 손님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입니다. 구글에서 검색해서 방문하는 관광객이거나 밀라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입니다. 기존의 틀을 벗어 던지고 보다 훌륭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로컬보다도 외부로부터 먼저 사랑을 받는 모양입니다.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매주 토요일 퍼블릭 커핑을 연다고 하네요.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참가비 없이 매주 새로운 커피 3종을 시음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맛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킬도 배우게 됩니다.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지면 질수록 품질 지향적인 커피숍의 생명력은 강인해지는 법입니다.
Epilogue #
지킬앤하이드는 1886년 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의 작품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명작입니다. 인간의 이중성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헨리 지킬은 정신분열증을 앓는 아버지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정신병원의 환자를 위해 인간의 본성을 나눌 수 있는 약을 만들려고 합니다. 지킬과 하이드는 서로를 눌러 버리려고 싸우지만, 지킬은 하이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하이드는 지킬의 몸부림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체로키 인디언의 속담에는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 늑대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악한 것과 선한 것, 결국에는 우리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는 이 속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정의롭게 변화 시키겠다던 이들이, 정반대의 삶을 살아내 큰 충격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CAFÉ 124의 모습은 지킬앤하이드가 아닙니다. 식음료 문화란 큰 줄기에서 다른 가지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오늘따라 유독 필자가 좋아하는 홍대의 커피 랩(Coffee Lab) 매장에서 마셔본 ‘극단적 대비’란 이름의 커피가 떠오릅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